'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78건
- 2009.03.30 이외수 소망상자, 바보바보
- 2009.03.24 추적자(2)
- 2009.03.23 중얼중얼..
- 2009.03.22 조선시대의 섹스스캔들, 감동과 어우동
- 2009.03.20 추적자
- 2009.03.20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 2009.03.20 동물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방나우 날아다닌 이야기...)
- 2009.03.18 바넘효과와 혈액형 2
작년 이 맘 때 읽으면서 "뭔 소리야.."했던 이외수 님의 소망상자를 다시 읽어보니,
와닿는 말들이 몇몇 있어서 옮겨 적는다.
<어째서>
어째서 자신들의 고독과 아픔은 그토록 안쓰럽고
타인의 고독과 아픔은 안중에도 없는 것일까요
타인의 고독과 아픔은 안중에도 없는 것일까요
<사랑의 적은 어디에 있는가>
지나치게 자기현시욕이 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안타깝게도 타인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일에만 주력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일에 실패를 초래해도 절대로 자신의 책임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당연히 사랑도 멀리 도망쳐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라도 사랑에 대한 희망은 있습니다.
아상(我相)에 갇혀 있는 자신을 향해 하루에도 몇 번씩 가차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만 있다면 장담컨대 진정한 사랑을 기대하셔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라도 사랑에 대한 희망은 있습니다.
아상(我相)에 갇혀 있는 자신을 향해 하루에도 몇 번씩 가차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만 있다면 장담컨대 진정한 사랑을 기대하셔도 무방합니다.
<간절한 소망>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도 아름다운 자이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도 아름다운 자입니다. 그리고 조금만 생각의 깊이를 더해도 이내 깨닫게 됩니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도 행복한 자이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도 행복한 자라는 사실을.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말은 누구나 사랑을 주고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간절하다고 모든 소망이 성사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은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은 사랑을 느낄 수 없으며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인간은 행복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말은 누구나 사랑을 주고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간절하다고 모든 소망이 성사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은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은 사랑을 느낄 수 없으며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인간은 행복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표현방식>
사랑과 용서에도 다양한 표현방식이 있습니다.
<사랑 탄생의 비밀>
사랑과 행복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봄에 꽃을 보면>
아상에 갇혀 있는 자들의 무기는 이기성이다. 이기성은 순리와 조화에 역행하는 특질을 가지고 있다.
...
그러나 깡패는 남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 존재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맞는 경우에는 아픔을 느끼고 때리는 경우에는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
그러나 깡패는 남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 존재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맞는 경우에는 아픔을 느끼고 때리는 경우에는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을 개선하고 싶다면>
자신의 악습을 마음속으로 합리화하거나 두둔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개선하기 어렵다.
만약 그대가 자신을 개선하고 싶다면 자신에게 엄격하라. 자신의 방문에 감옥의 철문을 주문해서 걸어잠그는 식의 철저함 정도는 가실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져야만 인생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만약 그대가 자신을 개선하고 싶다면 자신에게 엄격하라. 자신의 방문에 감옥의 철문을 주문해서 걸어잠그는 식의 철저함 정도는 가실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져야만 인생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관련글: 추적자(http://lakecity.tistory.com/entry/6)
글도 몇 개 없는 블로그에 방문자가 너무 많이 온다 싶어서 최근 5일간 블로그 유입 키워드를 보니
거의 대부분이 며칠 전 올렸던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기와 (역)탐지기'에 관한 것이었다.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기에 관한 관심이 크긴 큰가보다.
기왕 이렇게 된거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기'와 '역추적기',
이와 관련한 '싸이월드의 대응'에 대해 자세히 적어본다.
1.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기(사이트)
일단 검색어를 통해 들어온 분들을 위해 그분들이 원하는 것 먼저..
1)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싸이트: http://cywa.net // http://cyinfo.co.kr
(최근 싸이측의 강력 대응으로 대부분의 사이트가 막힌 것 같다. 찾아보니 현재 운영중인 사이트는 저 두개 정도가 있는데,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현재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2)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기 감지프로그램:
* 기능: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TID 또는 도메인을 입력하면 방문자 추적기 사용 여부를 알려줍니다.
TID: http://minihp.cyworld.com/pims/main/pims_main.asp?tid=######## 에서
######## 부분.
도메인: http://www.cyworld.com/##### 에서 ##### 부분.
짧은 시간 이내에 같은 미니홈피를 재검사할 경우 차단될 수 있습니다.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기 사용자들과 업자들이 꼴보기 싫어서 만들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으면 prtnshield@gmail.com으로 메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문의사항이 있으면 prtnshield@gmail.com으로 메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주의:
- 싸이월드 사진첩의 개편으로 인해 더 이상 사진첩 검사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며 나머지 검사 기능도 앞으로 사용 불가능하게 될 수 있습니다.
- CyScanner로 탐지 불가능한 종류의 방문자 추적기들이 존재합니다. 더 강력한 탐지 능력에 차단 기능까지 포함된 CyGuardian의 사용을 권장합니다.
* 기능: 싸이월드 이용 중 제3의 사이트로 전송되는 데이터를 탐지 및 차단.
CyScanner로 탐지 불가능한 것들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알려진 방문자 추적기를 무력화.
브라우징 기능과 함께 실시간으로 동작.
시스템에 어떠한 변경도 가하지 않으므로 설치 및 제거 과정 불필요.
브라우징 기능과 함께 실시간으로 동작.
시스템에 어떠한 변경도 가하지 않으므로 설치 및 제거 과정 불필요.
CyGuardian은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기의 박멸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미니홈피 뿐만 아니라 블로그, 클럽 또는 일촌공개 게시물에 설치된 추적기에도 효과적으로 작동합니다.
사용법은 일반적인 웹브라우저와 같습니다.
미니홈피 뿐만 아니라 블로그, 클럽 또는 일촌공개 게시물에 설치된 추적기에도 효과적으로 작동합니다.
사용법은 일반적인 웹브라우저와 같습니다.
탐지 및 차단이 불가능한 새로운 방문자 추적기를 발견하신 경우, 제작자에게 알려주시면 큰 도움이 됩니다.
문의사항이 있으면 prtnshield@gmail.com으로 메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문의사항이 있으면 prtnshield@gmail.com으로 메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주의: CyGuardian에 의해 아무것도 탐지되지 않는다고 해서 해당 페이지에 추적기가
없다고 확신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시스템에서 액티브 컨트롤 기반의 일부 추적기가 CyGuardian 내에서는 정상 작동하지 않아 탐지되지 않다가, 일반 웹브라우저 접속시에만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특정 시스템에서 액티브 컨트롤 기반의 일부 추적기가 CyGuardian 내에서는 정상 작동하지 않아 탐지되지 않다가, 일반 웹브라우저 접속시에만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기가 작동하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추적기는 메인이나 사진첩, 게시판 등등에 플래쉬나 스크립트 형태로 심어진다. 해당 스크립트는 싸이에 접속하는 순간, 접속한 사람의 컴퓨터에서 실행되어 컴퓨터 내부의 정보를 특정사이트로 보내주게된다.
따라서, 미니홈피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접속되는 모든 경로를 추적해서 원래 싸이월드 홈페이지가 아닌 다른 곳의 접속이 있으면 방문자 추적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방식은 태그를 이용해서 게시물에 배경음악과 같은 것들을 넣어두어도 추적기가 심어져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추적기는 메인이나 사진첩, 게시판 등등에 플래쉬나 스크립트 형태로 심어진다. 해당 스크립트는 싸이에 접속하는 순간, 접속한 사람의 컴퓨터에서 실행되어 컴퓨터 내부의 정보를 특정사이트로 보내주게된다.
따라서, 미니홈피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접속되는 모든 경로를 추적해서 원래 싸이월드 홈페이지가 아닌 다른 곳의 접속이 있으면 방문자 추적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방식은 태그를 이용해서 게시물에 배경음악과 같은 것들을 넣어두어도 추적기가 심어져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2. 싸이월드 측의 대응
<싸이월드 공지사항 2007/01/18>
http://www.cyworld.com/main2/notice/view.asp?seq=1845&page=1&search_keyword=방문자&
아직 싸이월드 가입상태였을 때,
게시판에 html이나 태그가 막혀서 편법으로 쓰느라 귀찮은 적이 많았는데,
알고보니 방문자 추적기 때문이었다.
"방문자를 확인하는 방법이 더는 작동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여, 안심하고 서비스를 이용하셔도 됩니다"
라고 싸이월드 측에서는 말했지만,
돈이 되는 일에 업자들이 그리 쉽게 포기할 리도 없거니와
싸이월드 측도 업자들이 새로운 방법을 개발할 때마다
그에 따른 조취를 한참 늦게 취하는 소극적인 대응을 하다보니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기는 몇 주 - 몇 개월간 작동하다가
몇 주정도 다시 막힘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그러다 작년 4월 강력한 대응으로 추적기 운영사이트 업자 11명이 구속된다.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8042514303397205&outlink=1)게시판에 html이나 태그가 막혀서 편법으로 쓰느라 귀찮은 적이 많았는데,
알고보니 방문자 추적기 때문이었다.
"방문자를 확인하는 방법이 더는 작동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여, 안심하고 서비스를 이용하셔도 됩니다"
라고 싸이월드 측에서는 말했지만,
돈이 되는 일에 업자들이 그리 쉽게 포기할 리도 없거니와
싸이월드 측도 업자들이 새로운 방법을 개발할 때마다
그에 따른 조취를 한참 늦게 취하는 소극적인 대응을 하다보니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기는 몇 주 - 몇 개월간 작동하다가
몇 주정도 다시 막힘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그러다 작년 4월 강력한 대응으로 추적기 운영사이트 업자 11명이 구속된다.
흥미로운 것은, 경찰에 걸린 14개 사이트 가입자수가 40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싸이월드 가입자를 대략 2천만명으로 잡고,
그 중 1/5을 주기적인 업데이트를 하는 적극적 이용자라고 한다면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한 추측이다..;;)
400만명...즉, 싸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 10명 중 1명 정도는 방문자 추적기를 쓴다는 말이다.
한 때, 심심할 때마다 친구들이나 관심있는 애들 싸이를 들어가곤 했는데,
그 중 누군가는 나의 방문을 지켜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니... 왠지 모르게 오싹하다.
하지만 저런 강력한 철퇴 후에도 추적기 사이트는 계속 생겨났었는데,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지난 3월 16일, 암호화 기술 업체 코드소프트는 야심차게 개발하고 특허를 취득한 기술에 대해
상금 천만원의 해킹 대회를 연 바 있다.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09031702010860739004)
그러나 그 업체는 2시간만에 홈페이지 게시판까지 해킹을 당하고 망신을 당했더랬다...ㅋㅋㅋㅋㅋㅋ
(그리고 www.codesoft.co.kr은 현재까지도 접속이 불가능하다.)
어떤 보안 방지법이 나오더라도
그에 대한 해킹 기법 역시 (저렇게 순식간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나올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방식은 스크립트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물론 난 못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일단 이것부터 동의하고 들어가자.
"싸이월드 측이 방문자를 비공개로 하는 약관을 유지하는 한, 방문자 추적기를 설치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방문자 추적기는 싸이월드 이용자들이 싸이월드 측에 제공한 정보(아이디, 실명, 지역, 접속 시간 등)를 제 3자가 불법적으로 훔쳐가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이다.
1) 방문자 추적기 설치자의 처벌
"사실 서비스를 의뢰한 이용자들도 모두 공범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의뢰자 규모가 워낙 방대해 이번 처벌 대상에서는 제외시켰다."
라고 위 방문자 추적기 사이트 운영자 검거 기사에서도 나와있듯이,
추적기를 이용한 사람도 처벌하면 된다.
하지만 수 십만 명에 달하는 이용자를 처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라고 위 방문자 추적기 사이트 운영자 검거 기사에서도 나와있듯이,
추적기를 이용한 사람도 처벌하면 된다.
하지만 수 십만 명에 달하는 이용자를 처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2) 싸이월드 방문자의 공개
방법은 간단하다.
싸이월드 측에서 미니홈피 방문자를 공개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실제로 싸이월드 클럽 같은 경우는 클럽 방문자를 공개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경우 방문자가 클릭하여 방문 사실을 숨길 수 있다.
다만...방문자를 공개하지 않는,
일종의 '관음증 마켓팅'을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싸이월드 측이 방문자를 공개할 가능성은
내가 바로 내일 여자친구가 생길 확률보다 훨씬 낮다..;;
싸이월드 측에서 미니홈피 방문자를 공개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실제로 싸이월드 클럽 같은 경우는 클럽 방문자를 공개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경우 방문자가 클릭하여 방문 사실을 숨길 수 있다.
다만...방문자를 공개하지 않는,
일종의 '관음증 마켓팅'을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싸이월드 측이 방문자를 공개할 가능성은
내가 바로 내일 여자친구가 생길 확률보다 훨씬 낮다..;;
결국 싸이월드의 정책의 방향이 바뀌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막고 뚫고'를 반복하는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링크한 CyScanner와 CyGuardian 개발자분의 생각을 옮겨 적는다.
지금과 같은 '막고 뚫고'를 반복하는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링크한 CyScanner와 CyGuardian 개발자분의 생각을 옮겨 적는다.
방문자 추적기와 관련된 진의는 싸이월드 관계자만이 알고있을겁니다. 하지만 1년이 넘는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어떤 블로거는 운영 중인 추적기의 소스와 로직을 분석하여 직접 메일로 보냈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http://itviewpoint.com/102744
http://itviewpoint.com/102744
지난 주말 엄마의 생신이라 춘천에 다녀왔다.
나우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다 본 우리집의 야경은 언제봐도 참 아름답다.
(실상은 20년 된 낡은 아파트지만...)
작년 생신에는 여자친구가 골라준 멋드러진 구두를 선물로 드려서 참 좋아하셨더랬는데,
금년엔 사정이 안좋아서 꽃바구니로 대신해서 참 죄송했다.
자식 뒷바라지를 하느라 평생을 보내신 우리 부모님...
헤아려 보니 어느새 아버지는 일흔, 엄마는 예순이 몇 년 남지 않으셨다.
벌써 5년째 키우고 있는 강아지만 봐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서른셋 먹도록 일흔을 바라보시는 아버지께 손주를 안겨드릴 생각은 커녕
아직 결혼 생각조차 없는 것이 참 죄송스러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감사하면서
한편으론 죄송스럽게도 '나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과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가며 사는 삶이 바람직한 것인가'
'과연 나 또한 본받아야 하는 삶인가'라는 생각을 늘 해왔지만,
여전히 나는 그런 삶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변사람들에게 결혼해서도 가급적이면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하면,
(가급적이면: 아내와 양가 부모님들이 모두 동의한다면)
대체로 내세우는 논리는 '그러면 늙어서 얼마나 외로운데..'였던 것 같다.
자식이 있으면 늙어서 외롭지 아니한가?
내가 낳아서 키운 아이가 나같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불효자식이라면,
자식이 있건 없건 늙어서 외로운건 똑같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운 것이 싫어서 자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마음에 안든다.
그렇다는 건 자식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한다는 것 아닐까?
(지금이야 죄송스런 마음 뿐이지만) 그런 '기대와 바램'을 듬뿍 받았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자식'은 얼마나 힘들고 부담스러울지...
그러고 보면 가족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사랑에 있어서도,
우리는 항상 어떤 '보상'을 바라고 있는 듯 싶다.
'우리'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많으니 '적어도 나는'으로 수정한다...
사랑했다고 느꼈던 녀석에게 조차 '나는' 항상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했던것 같다.
그러면서 정작 사랑했던 그 시기에는 '내 사랑은 전혀 그렇지 않고 순수하다'고 자기암시를 하면서 말이다.
내가 그렇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배려를 바라고, 상대방의 사랑을 원하는...
그런데 난...생각을 이렇게 하지만 생각대로 바뀔 것 같진 않다.
그러니 평생 혼자 사는게 어울린단 얘길 듣지..-_-;
생각해보면 평생 혼자 사는 것도 그리 나쁠것 같진 않다..;;
이 말만 믿고 가자..ㅋㅋ
(별로 동의는 않하지만..;;)
고 장자연 씨의 유서에 적힌 성상납 문제로 온통 시끄럽다.
개인적으로 별로 관심이 없는데도 방송에서 하도 떠들어대니 조금은 볼 수 밖에 없을 정도다.
(기자들은 기사거리 넘쳐나서 신났을 듯..;)
고 장자연 씨 사건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조선시대의 양대 섹스스캔들'이라는 조금은 선정적인 주제로 글이 쓰고 싶어졌다.
1. 칠거지악(七去之惡)과 삼종지도(三從之道)
드라마 '천추태후'의 왕욱과 황보설
드라마 천추태후를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보수적인 옛 시대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종종 등장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부인 신정왕후 황보(皇甫)씨가 낳은 대종(戴宗) 왕욱(王旭)은
태조와 정덕왕후 유씨가 낳은 배다른 누이 선의왕후와 결혼하여
성종(6대), 천추태후(헌애왕후)와 헌정왕후를 낳는다.
이 중 헌애왕후(황보수)와 헌정왕후(황보설)는 사촌오빠인 경종(5대)과 결혼하고
헌애왕후는 경종과의 사이에서 경종이 죽기 1년 전 유일한 왕자 송(誦, 훗날 목종(7대))을 낳는다.
경종이 죽은 헌애왕후는 외가친척인 김치양 정을 통하여 아이를 낳았다.
헌정왕후는 이복숙부 안종(安宗) 왕욱(王郁)과 정을 통하여 아이를 낳는데, 이 아이가 훗날 현종(8대)이 된다.
정신없이 복잡하지만 재미있지 않은가?
자매가 사촌과 결혼했다가 남편이 죽자 외가친척, 삼촌과 정을 통하는 이런 상황은
현대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 몰라도,
근친혼이 하나의 풍습이었던 고려시대에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근친혼 뿐만 아니라 위에서 알수 있 듯 고려시대에는 남편을 잃은 여인들의 재가도 비교적 자유로웠다.
고려전통의 정조 관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교적 잣대와는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유학을 고려의 통치이념으로 삼으려던 그녀들의 오빠 성종은 이런 상황을 용납할 수 없던 것 같다.
그는 김치양에게 곤장을 친 후 귀양 보내었으며, 안종 왕욱 또한 경상도 사천으로 귀양 보내졌다.
자유로웠던 여성의 지위는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세워진 후에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이는 유교가 여성에게 강요했던 칠거지악(七去之惡)과 삼종지도三從之道)에 여실히 드러나있다.
칠거지악(七去之惡): 남편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잘못
1)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음 (不順父母)
2) 아들이 없음 (無子)
3) 음탕함 (不貞)
4) 질투함 (嫉妬)
5) 나쁜 병이 있음 (惡疾)
6) 말이 많음 (多言)
7) 도둑질을 함 (竊盜)
삼종지도(三從之道): 여자가 지켜야할 세 가지 법도
女子有三從之道: 여자는 세 가지의 좇아야 할 길이 있는데,
在家從父: 집에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適人從夫: 시집을 가면 지아비에게 순종하며,
夫死從子: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의 뜻을 따라야 한다.
在家從父: 집에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適人從夫: 시집을 가면 지아비에게 순종하며,
夫死從子: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의 뜻을 따라야 한다.
이렇듯 조선시대의 여성은 성은 물론 정신과 노동력까지 완벽하게 노예에 가까운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의 여성 억압은 남성들에 의해 구조적으로 또한 집요하게 자행되어왔던 것이다.
이를 벗어나는 또는 벗어나려는 여성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조선의 모든 여성들이 이런 억압에 종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은 억압에 순응하면서 살아갔지만,
일부는 저항하고 또 일부는 오히려 남성을 지배하며 살아갔다.
여기서는 이들 중에서 성(性)적으로 남성을 지배했던 두 여성, 감동과 어우동에 대하여 적어보려한다.
조선시대의 여성 억압은 남성들에 의해 구조적으로 또한 집요하게 자행되어왔던 것이다.
이를 벗어나는 또는 벗어나려는 여성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조선의 모든 여성들이 이런 억압에 종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은 억압에 순응하면서 살아갔지만,
일부는 저항하고 또 일부는 오히려 남성을 지배하며 살아갔다.
여기서는 이들 중에서 성(性)적으로 남성을 지배했던 두 여성, 감동과 어우동에 대하여 적어보려한다.
2. 조선시대의 섹스스캔들 - 감동과 어우동
단원 김홍도의 춘화
김홍도와 신윤복은 바람의 화원에서처럼 생동감 있는 풍속화나 인물화만 그린 것이 아니다.
그들의 춘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하드코어적이다...-_-; 하드코어한 춘화는 아래 링크에서...
http://blog.empas.com/hspark2050/32052770
감동(甘同)은 조선 세종 때 남자 30 여명과 간통한 죄로 처벌 받은 여자이다.
아버지는 검한성(檢漢城)을 지낸 유귀수(兪龜壽)였고, 남편은 평양현감을 지낸 최중기(崔仲基)였다.
남편 최중기가 무안군수로 부임할 때 감동을 데리고 갔는데, 감동이 병이 생겨 서울로 올라왔다.
이 때 김여달이란 인물이 집으로 가는 감동을 순찰한다고 위협해 강간했던 일이
그녀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김여달은 대담하게도 남편이 없는 그녀의 집을 드나들면서 통정을 했고,
감동은 이미 버린 몸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창기(娼妓)라 칭하고 여러 남자들과 통정하였다고 한다.
(감동이 서울로 올라온 이유와 김여달에 의한 강간 시기, 간통한 자의 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감동이 공식적으로 밝힌 남자들의 숫자는 39 명이었으며,
그 외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이 양반이었지만 수공업기술자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분에 상관없이 애정행각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에는 총제 정효문, 상호군 이효량, 해주판관 오안로, 전 도사 이곡 등 고관들의 이름도 보였고,
사직, 부사직, 판관, 찰방, 현감 등의 벼슬도 보였다고 한다.
특히 정효문은 감동이 숙부 정탁의 첩이 되었을 때 통정을 하여
권격은 감동이 고모부 이효례와 관계가 있는 것을 알고도 통정을 하여 조선을 경악시켰다.
사헌부에서는 감동에게 교형, 정효문에게 참형에 처하게 하고
그외 관련자에게는 곤장과 자자(이마에 먹물로 죄를 새기는 것)을 청했지만,
감동은 최종적으로 관비로 변방으로 보내는 형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감동을 강간했던 김여달은 물론 나머지 사람들도 장형이나 파직 정도의 가벼운 처벌만이 내려졌다.
그 중에는 다시 벼슬에 오른 사람도 있다.
법에 의거하자면 사대부 집 출신의 여자와 간통을 한 남자들 역시 중벌에 처해져야 하는데,
이 시대에는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 후의 행실이 정숙하지 못할 때는 남자에게 죄를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감동을 강간·폭행·위협·공갈한 김여달에 대해서는 추후에 자주 극형 또는 중형을 청하는 일이 있었다.
혜원 신윤복의 춘화
김여달에게 강간당한 후 스스로 버린 몸이라 생각하고 창기로 살아갔던 감동에 비해
어우동은 스스로 억압에 저항하고, 오히려 남성을 지배했다는 점이 다르다.
정3품인 승무원 지사 박윤창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어우동은 자색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종친인 정4품 태강수 이동과 혼인한 그녀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지만,
틀에 박힌 삶을 거부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
대부분 양반과 정을 통한 감동과 달리 그녀는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조선의 대표적 지배 이데올로기인 신분제와 성차별 따윈 가볍게 무시해주는 센스를 발휘한 것이다.
그녀가 남편 외에 처음으로 정을 통한 대상은 그릇을 만드는 천한 신분의 은장(銀匠)이었다.
"남편이 나가면 계집종의 옷을 입고 은장이 옆에 앉아서 그릇을 만드는 솜씨를 칭찬하다
내실로 끌어들여 마음껏 음탕한 짓을 하다가 남편이 들어오면 몰래 숨기곤 했다."라고 하니
참 대담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애정행각은 곧 발각되었고 남편 이동은 어우동을 쫓아낸다.
어우동은 친정에 들어갔다가 집을 얻어 나간후 본격적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한다.
그 곳으로 수많은 남자를 끌어들였고 그들을 지배한다.
그 중 하나가 전남편 이동과 가까운 친척뻘인 방산수 이난이다.
아무리 처첩제도가 공인된 조선시대에도 친척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난이 어우동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그녀가 그만큼 매력적이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어우동이 이난을 좋아한 것은 "그가 젊고 호탕하며 시를 지을 줄 알기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시기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시를 지을 줄 알았다는 점을 보면,
그녀도 시를 지을 줄 알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그녀가 육체이상의 매력을 지녔음을 뜻한다.
수산수 이기 또한 이동의 친척으로 그녀와 정을 통하기도 했으며,
이시애의 난을 정벌한 공로로 1등 공신에 책봉된 어유소, 전 의금부도사 김휘, 우부승지 노공필,
절충장군 김세적, 전 부평부사 김칭, 전 좌랑 정숙지 등 많은 벼슬아치들이 그녀와 정을 통했다.
이중 어유소는 조상을 모시는 사당에서 정을 통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예의의 나라 조선에서 감히 조상을 모시는 곳에서 간통이라니, 조선이 발칵 뒤집힐 만도 했다.
어우동의 애정행각이 어떻게 해서 발각되었는 지는 분명하게 알려져있지 않지만,
일단 한번 밝혀진 후 조선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격론끝에 그녀는 성종 11년 10월 사형에 처해졌지만,
그녀와 정을 통한 남성들은 성종 13년 이난과 이기가 유배에서 풀려난 것을 마지막으로 모두 석방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어우동의 사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현재 사형제 존치론자들이 주장하는 범죄예방효과로써의 사형제를
그시절 어우동의 사형을 주장했던 신하들이 그대로 얘기했다는 것이다.
세종시절 감동을 사형시키지 않아 어우동의 사건이 재발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그랬을까?
어우동이 사형에 처한 후, 조선 후기에는 표면적으로 섹스스캔들이 감소했다.
허나 조선후기의 화가인 김홍도와 신윤복의 노골적인 춘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그야말로 표면적인 감소가 아니었을까?
사형제 존치론의 범죄예방효과가 조선시대에도 이미 논의되었다고 하니,
그놈의 사형제 존치론... 참 지긋지긋하다.
게다가 그녀는 사형확정 당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형확정 18시간만에 집행된 위대하신 박정희 정권의 인혁당 사건이 생각나는 것은 나뿐인가...
단원 김홍도의 춘화
김홍도와 신윤복은 바람의 화원에서처럼 생동감 있는 풍속화나 인물화만 그린 것이 아니다.
그들의 춘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하드코어적이다...-_-; 하드코어한 춘화는 아래 링크에서...
http://blog.empas.com/hspark2050/32052770
감동(甘同)은 조선 세종 때 남자 30 여명과 간통한 죄로 처벌 받은 여자이다.
아버지는 검한성(檢漢城)을 지낸 유귀수(兪龜壽)였고, 남편은 평양현감을 지낸 최중기(崔仲基)였다.
남편 최중기가 무안군수로 부임할 때 감동을 데리고 갔는데, 감동이 병이 생겨 서울로 올라왔다.
이 때 김여달이란 인물이 집으로 가는 감동을 순찰한다고 위협해 강간했던 일이
그녀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김여달은 대담하게도 남편이 없는 그녀의 집을 드나들면서 통정을 했고,
감동은 이미 버린 몸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창기(娼妓)라 칭하고 여러 남자들과 통정하였다고 한다.
(감동이 서울로 올라온 이유와 김여달에 의한 강간 시기, 간통한 자의 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감동이 공식적으로 밝힌 남자들의 숫자는 39 명이었으며,
그 외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이 양반이었지만 수공업기술자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분에 상관없이 애정행각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에는 총제 정효문, 상호군 이효량, 해주판관 오안로, 전 도사 이곡 등 고관들의 이름도 보였고,
사직, 부사직, 판관, 찰방, 현감 등의 벼슬도 보였다고 한다.
특히 정효문은 감동이 숙부 정탁의 첩이 되었을 때 통정을 하여
권격은 감동이 고모부 이효례와 관계가 있는 것을 알고도 통정을 하여 조선을 경악시켰다.
사헌부에서는 감동에게 교형, 정효문에게 참형에 처하게 하고
그외 관련자에게는 곤장과 자자(이마에 먹물로 죄를 새기는 것)을 청했지만,
감동은 최종적으로 관비로 변방으로 보내는 형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감동을 강간했던 김여달은 물론 나머지 사람들도 장형이나 파직 정도의 가벼운 처벌만이 내려졌다.
그 중에는 다시 벼슬에 오른 사람도 있다.
법에 의거하자면 사대부 집 출신의 여자와 간통을 한 남자들 역시 중벌에 처해져야 하는데,
이 시대에는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 후의 행실이 정숙하지 못할 때는 남자에게 죄를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감동을 강간·폭행·위협·공갈한 김여달에 대해서는 추후에 자주 극형 또는 중형을 청하는 일이 있었다.
혜원 신윤복의 춘화
김여달에게 강간당한 후 스스로 버린 몸이라 생각하고 창기로 살아갔던 감동에 비해
어우동은 스스로 억압에 저항하고, 오히려 남성을 지배했다는 점이 다르다.
정3품인 승무원 지사 박윤창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어우동은 자색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종친인 정4품 태강수 이동과 혼인한 그녀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지만,
틀에 박힌 삶을 거부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
대부분 양반과 정을 통한 감동과 달리 그녀는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조선의 대표적 지배 이데올로기인 신분제와 성차별 따윈 가볍게 무시해주는 센스를 발휘한 것이다.
그녀가 남편 외에 처음으로 정을 통한 대상은 그릇을 만드는 천한 신분의 은장(銀匠)이었다.
"남편이 나가면 계집종의 옷을 입고 은장이 옆에 앉아서 그릇을 만드는 솜씨를 칭찬하다
내실로 끌어들여 마음껏 음탕한 짓을 하다가 남편이 들어오면 몰래 숨기곤 했다."라고 하니
참 대담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애정행각은 곧 발각되었고 남편 이동은 어우동을 쫓아낸다.
어우동은 친정에 들어갔다가 집을 얻어 나간후 본격적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한다.
그 곳으로 수많은 남자를 끌어들였고 그들을 지배한다.
그 중 하나가 전남편 이동과 가까운 친척뻘인 방산수 이난이다.
아무리 처첩제도가 공인된 조선시대에도 친척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난이 어우동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그녀가 그만큼 매력적이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어우동이 이난을 좋아한 것은 "그가 젊고 호탕하며 시를 지을 줄 알기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시기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시를 지을 줄 알았다는 점을 보면,
그녀도 시를 지을 줄 알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그녀가 육체이상의 매력을 지녔음을 뜻한다.
수산수 이기 또한 이동의 친척으로 그녀와 정을 통하기도 했으며,
이시애의 난을 정벌한 공로로 1등 공신에 책봉된 어유소, 전 의금부도사 김휘, 우부승지 노공필,
절충장군 김세적, 전 부평부사 김칭, 전 좌랑 정숙지 등 많은 벼슬아치들이 그녀와 정을 통했다.
이중 어유소는 조상을 모시는 사당에서 정을 통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예의의 나라 조선에서 감히 조상을 모시는 곳에서 간통이라니, 조선이 발칵 뒤집힐 만도 했다.
어우동의 애정행각이 어떻게 해서 발각되었는 지는 분명하게 알려져있지 않지만,
일단 한번 밝혀진 후 조선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격론끝에 그녀는 성종 11년 10월 사형에 처해졌지만,
그녀와 정을 통한 남성들은 성종 13년 이난과 이기가 유배에서 풀려난 것을 마지막으로 모두 석방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어우동의 사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현재 사형제 존치론자들이 주장하는 범죄예방효과로써의 사형제를
그시절 어우동의 사형을 주장했던 신하들이 그대로 얘기했다는 것이다.
세종시절 감동을 사형시키지 않아 어우동의 사건이 재발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그랬을까?
어우동이 사형에 처한 후, 조선 후기에는 표면적으로 섹스스캔들이 감소했다.
허나 조선후기의 화가인 김홍도와 신윤복의 노골적인 춘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그야말로 표면적인 감소가 아니었을까?
사형제 존치론의 범죄예방효과가 조선시대에도 이미 논의되었다고 하니,
그놈의 사형제 존치론... 참 지긋지긋하다.
게다가 그녀는 사형확정 당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형확정 18시간만에 집행된 위대하신 박정희 정권의 인혁당 사건이 생각나는 것은 나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