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별곡 - 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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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은 줄지를 않고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가 않는다.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에 바쁘다.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이 죽어나가고


내가 꿈꾸던 새로운 조선은 저만치서 다가 오지를 않는다.


아무리 소름이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나는 결코 저들을 이길 수가 없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내가 백성들을 설득하지 못해 지는 것이다.


나의 신념은 현실에 조롱당하고
 나의 꿈은 안타까운 희생을 키워 가는데

포기 하지 않는 나는, 과연 옳은 것이냐.

나영아. 너라면 어찌 하겠느냐.





'한성별곡 - 正'은 조선시대의 마지막 황금기였던 정조시대,

정조말기의 정치적 격변기를 살아간 임금, 중인, 서얼, 그리고 노비를 통해 그들의 고뇌와 실패를 그려낸 드라마이다.



한성별곡은 기존의 사극과는 여러 점에서 다르다.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의 사극은 영웅(절대선)의 일대기를 그리기위해 절대악을 등장시킨다.

주몽, 해신, 불멸의 이순신, 대장금, 정조 이산, 선덕여왕, 태왕사신기(얘는 사극이 아니라 판타지지만..) 등

최근 몇 년간 시청자를 사로잡은 사극에는 예외없이 절대악인 주연급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사극속 우리의 주인공들은 이런 절대악을 극복해가며 성장하여 승리하고, 결국 영웅이 된다.



'한성별곡'속 주연급에 절대악은 없다.

임금과 세 젊은이(중인, 서얼, 노비)는 각각 자신이 소망하는 꿈(正,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있고,

각자의 방법으로, 때로는 악한 수단까지 마다하지 않고 그 꿈을 위해 나아간다.

선(善)과 악(惡)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正)을 위해, 또는 자신 정이라 생각하는 것을 위해, 나아가다보면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실에선 최선은 존재하지 않으며, 차선 또는 차악만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몫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옳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서 방황하며 그들은 고뇌한다.


'이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 옳은 방법인가?'


'한성별곡'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런 고뇌를 잘보여주는 수작이었다.

(물론 현실은 '커피프린스 1호점'과 맞붙어 시청률은 박살이 났지만..;;)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고민 좀 하고 살라고, 자신을 돌아보고 살라고,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을까 생각해보라고 역설한다.

(한성별곡 박진우 작가 인터뷰, http://blog.kbs.co.kr/kwarkjh/1663)





사전제작, 그것이 진리!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혼'은 명품드라마의 싹을 보여줬던 드라마가

사전제작하지 않아서 시망하게 된 아주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MBC 자체제작임에도 외주제작과 같은 출연진과 OST, 같은 소속사에 속한 조연급 연기자들의 엉성한 연기, 10부작임에도 중간에 바뀐 작가로 인해 끊긴 스토리의 연속성 등)


'한성별곡'은 반대로 사전제작을 하면 어떤 드라마를 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일단, 사전제작을 하니 극의 내용이 시청률에 따라 바뀌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였다.


이를 통해 탄탄한 구성과 연출, 그리고 치밀한 스토리가 가능했다.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공영방송인 KBS 드라마의 힘이기도 하다.
그 덕에 부활, 마왕과 같은 명품 드라마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또, 사전제작을 통해 충분한 촬영시간이 보장되니 젊은 신인급 연기자들의 연기력 발전이 눈에 보였다.

서얼로 태어나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고민하며 현실에 좌절한 박상규 역의 진이한.

참판의 딸로 선진문물과 사상을 접하고 높은 꿈을 꾸었던, 하지만 역도의 자식이 되어 다른 방법으로 꿈을 쫒은 이나영 역의 김하은.

양반이 아닌 자들을 위해 부를 쌓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양만오 역의 이천희.



이 세 명의 신인급 연기자들은 극 초반 어색한 연기로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약이 되었는지, 회를 거듭할 수록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주더니 후반에는 어떤 흠도 없었다.



거기에 주조연급 중견연기자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연기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도 임금 역의 안내상의 연기는 발군이었다.

안내상 씨의 그런 연기는 작가, 감독과의 충분한 대화와 정조에 대한 충실한 사전연구를 바탕으로 이뤄졌는데,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list.php?mm=002003000, 이 링크에서 안내상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아쉽게도 매거진넷은 2008년에 망했다..-_-; 그래서 지금은 저 링크를 클릭해도 인터뷰를 볼 수 없다는..;;)

이 역시도 사전제작을 통해 배우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작가 인터뷰 중...

- 안내상이 연기한 왕은 독특했다. 피곤하고, 불안했고, 조급해 보였다. 대본 쓸 당시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나?
개인 내부의 복수심을 억누르려는 군주, 기득권에 대항해 자신의 개혁의지를 실행에 옮기려는 군주, 좌절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군주, 이 정도가 대본 쓸 당시 캐릭터였다. 하지만 안내상씨는 대본 그 이상의 정조를 보여줬다. 그것은 대본을 뛰어넘는 배우의 개인 능력이 뿜어져 나온 것이라 생각하는데, ‘한성별곡’에서는 안내상씨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연기란 무엇이다라고 몸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반영한다.



작가의 말처럼, 역사 어느 때이건 돌이켜보면 언제나 현재와 유사한 점이 많다.

그 중에서도 정조시대는 현재와 특히 더 유사한데,
(이앙법의 보편화가 가져온 부의 편중과 그로 인한 양극화, 화성천도 시도와 기득권의 반발, 정치권의 심각한 갈등 등
- 작가 인터뷰 참조)


한성별곡은 아예 노골적으로 현실을 풍자해버렸다.

드라마 내에서도 그렇지만 티저예고 영상은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반영해보려는 제작의도를 대놓고 보여준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을 때,

김대중 대통령께서 '실천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역설하셨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이 드라마였다.

현실과 너무도 비슷해서...




소망하지 않는다면 어찌 얻을 수 있을까

애쓴만큼 얻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나라의 녹을 먹는 우리가 해야할 일 이 아닙니까

그대로 두는 법을 안다면 그대로 두어라. 허나 그 법이 쉽지 않지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알면....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것이 누구를 위한 미래란 말이오
조선의 백성들과 조선의 후손들을 휘한 미래입니다

어찌 희생하지 않고서 그 신념을 지켜낼 수 있겠습니까

두려움에 떤다면 어찌 모든 것을 걸 수 있겠습니까

나의 신념은 현실에 조롱당하고, 나의 꿈은 안타까운 희생을 키우는데...
포기하기 않는 나는 과연 옳은 것이냐...

마지막 소망, 내 나라 조선입니다.





소망하지 않으면, 희생하지 않으면 신념을 지켜낼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소망하는 사람도, 희생하는 사람도 없고,

주위엔 온통 신념따윈 개나 줘버린 사람뿐이다...후...




ps.
'한성별곡'에서 모든 음모의 중심이었던 정순왕후 역의 정애리 씨는
채널CGV의 드라마 '정조암살미스테리 - 8일'에서는 그 대척점에 있던 혜경궁 홍씨의 역을 맡았다.
http://www.chcgv.com/special/8days/community/main.asp
전혀 다른 역할을 거의 같은 시기의 두 드라마에서 맡았던 정애리 씨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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