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석탑의 복원은 왜 계속 늦춰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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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륵사지 석탑

  

 

그림 1. 해체 전의 미륵사지 석탑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http://www.nricp.go.kr/kr/data/mkr/find/view_home_img.jsp?img_path=http://221.145.178.204/nrichdata/common/culture_img/1_8.jpg&img_caption=3차원 스캐너를 이용한 석조문화재 보존)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무왕 때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 최고최대(最古最大)석탑으로

백제 목탑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목탑형 석탑이다.

 


백제의 무왕과 그의 아들 의자왕으로 이어지는 시기는 백제의 마지막 전성기로 볼 수 있는 시기이다
.

(의자왕은 삼천궁녀처럼 방탕과 사치의 대명사로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신라에 대대적인 침공을 감행하여 신라의 40 여성을 함락하여 신라에 두려움을 준 군주이다.

의자왕에 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고 또 재미있지만,

글의 주제를 벗어나 샛길로 빠질 수 있으니 다음에 기회가 될 때...)

 


미륵사의 창건배경에 대해서 말하려면 무왕이 백제의 왕이 되기 전후 시기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기가 바로 이 시기)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 시기에 한성을 빼앗기고 수도를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

이후 백제는 여러 차례 위기를 극복한 후 성왕 시기에 다시 중흥의 기틀을 마련한다.

성왕은 신라와 그 유명한 나제동맹을 맺고 빼앗겼던 한강유역의 6군을 회복할 뻔하였다.

이때의 전투에서 주력군은 백제군이었고, 신라군은 보조군대에 지나지 않았으니,

백제로서는 당연히 옛 땅을 회복할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신라 진평왕(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이순재 씨가 분한 진평대제)의 배신으로

도리어 이 땅을 신라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에 분노한 성왕이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그는 관산성(현재의 옥천)에서 전사하고 만다.

이후부터 백제의 멸망시기까지 백제와 신라는 전쟁상태에 놓이게 된다.

성왕의 전사이후 백제는 귀족들의 발호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빠졌고,

법왕과 혜왕은 즉위한 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귀족들에 의해 살해된다.

 


이러한 혼란의 시기를 수습하고 백제의 마지막 중흥기를 이룬 군주가 서동요로 유명한 무왕이다
.

무왕은 위기극복과 왕권강화를 통해 체제정비를 추구한 동시에,

신라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는데(재위 42년간 12차례나 신라를 공격),

동양최대의 사찰인 미륵사는 이런 목적을 위해 건설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륵사가 위치한 전북 익산은 태어나자마자 쫓겨난 무왕에게 도움을 준 세력의 근거지이자,

신라와의 격전지에 매우 가까이 위치한 지역이기도 하다.)

 


미륵사는 이와 같은 역사적인 가치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보았을 때
,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의 양식 이행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 문화재이므로 매우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림 2. 미륵사지 석탑 추정도

 

 

이런 미륵사지 석탑은 지진, 지반의 부동침하 등의 외부요인으로 인해

일부가 붕괴되어(되었다고 추정되어) 몇 번의 개보수 과정을 거쳤는데(그림 1 참조),

1998년 구조안전진단결과 추가 붕괴의 위험성이 제기되어

붕괴원인조사 및 복원을 위하여 2001년 해체보수 작업에 착수하여 현재까지 해체가 진행 중에 있다.

본래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은 2007년 완료될 예정이었지만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120019008)

해체 과정에서 사리장엄구의 발견, 복원작업의 어려움 등의 이런저런 이유로

2009년까지 미뤄졌다가 또 다시 2014년으로 미뤄졌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미륵사지 석탑 정비계획을 위한 구조안정성 평가연구’에 관련된 연구용역에

아주 잠깐(3개월 정도?) 참여하여

자문회의도 두어 번 참석해보고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현장을 몇 번 찾아가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 글은 구조공학적 및 암석역학적으로 보았을 때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이 왜 계속 미뤄지는 지에 대한 내용을 최대한 쉽게 다뤄보려고 한다.

(글 쓰는 능력이 떨어져서 정말 쉬울지는 미지수..;;)

 


뭐, 이런 주제의 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남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 마이너한 블로그를 지향하니 만큼..;;

 

 

 

 

2. 미륵사지 석탑의 구조

 

 

구조적으로 봤을 때, 미륵사지 석탑은 심주석, 적심석, 치장석 등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그림 3. 미륵사지 석탑의 구조의 추정도

 

 

심주석은 탑 안쪽 중심부에서 기둥과 같은 역할은 하는 돌이다.

심주석은 탑 전체의 하중을 지탱하여 탑의 기단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가로, 세로는 각각 1m 정도, 그리고 높이는 얼마더라?;;

 

치장석(그림 4)은 탑의 외부에서 보게 되는 면의 돌로서,

지붕모양의 옥개석, 상옥개받침, 하옥개받침, 면석, 하방석으로 구성된다.

미륵사지 석탑의 한 층은 위 5개의 돌들이 석탑의 4면을 둘러싸면서 이뤄진다.

 

 

 

그림 4. 1개 층의 치장석 구성

 

 

적심석은 치장석과 심주석사이의 공간에 채워넣는 돌로써, 크기와 모양이 매우 불규칙하다(그림 5 참조).

불규칙한 적심석사이의 공간은 모래와 진흙 등으로 매꿔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석탑 건설 초기에는 적심석 역시 탑의 하중을 기단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 바람 등으로 인해 적심석 사이 공간이 비워진 후에는

탑의 하중을 심주석으로 전달하는 역할만을(또는 그 역할조차도 제대로 수행 못)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로인해 외부 치장석에서 균열 및 파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적심석이 단순히 심주석에 하중을 전달하는 역할만을 했는가, 아니면 하중을 지탱하는 역할도 병행했는가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간단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심주석: 탑의 기둥, 탑 전체의 하중을 지탱하여 기단부로 전달

             치장석: 탑 겉모습

             적심석: 탑의 하중을 심주석에 전달

 

 

 

그림 5. 2층까지 해체되고 1층만이 남았을 때의 미륵사지석탑

 

 

 

 

 

3. 미륵사지 석탑의 붕괴 원인

 

 

미륵사지 석탑은 조적식 구조물이다.

조적식 구조물이란 돌 ·벽돌 ·콘크리트블록 등을 쌓아 올린 건축구조로서,

내구성은 우수하지만 지진 등에 의한 수평방향의 외력(外力)에 대하여 약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러한 조적식 구조물에 대한 체계적인 해석 및 보수, 보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편인데,

미륵사지 석탑에 관한 대부분의 구조적 연구 역시,

건립시기와 양식 등의 심미적 관점의 건축사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현재 미륵사지 석탑에 대한 구조공학적 관점의 연구는

미륵사지석탑의 붕괴원인을 분석하는 단계까지 진행되어있다.

기존 연구결과의 추론과 검증에 따르면 붕괴원인은

 


지반의 침하로 인한 적층구조물의 안정성의 저하,

낙뢰로 인한 상부 구조물의 탈락,

지진 및 바람하중으로 인한 과도한 횡변위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낙뢰로 인한 상부 구조의 탈락과 지진 등이 사료에 언급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철탑도 아닌 석탑이 낙뢰로 인해 (일부) 붕괴되었다는 건 개인적으로 믿기 어렵고,

(, 그림 2에서 보면 상륜부가 금속으로 되어있으니 가능할지도..;;)

지진이 거의 없는 국내 특성상 지진이 석탑 붕괴의 일부 또는 전체 원인이었다는 것 역시 믿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1. 지반침하로 인한 석탑의 안정성 저하

(미륵사 서탑 초석 최대 16㎝ 기울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8041805461&code=960201)

 

2. 적심석 사이 진흙과 모래의 유실로 인한 치장석 및 적심석의 하중 증가와 치장석의 파괴

 

이 두 가지가 미륵사지 석탑 붕괴의 주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해체되기 전후의 치장석과 적심석을 살펴보면 곳곳에 균열이 발생한 것이 보인다.(그림 4, 6, 7, 8)

 

 

 

그림 6. 파괴된 치장석 1

 

 

그림 7. 파괴된 치장석 2

  

 

그림 8. 파괴된 적심석

 

 

 

 

 

4. 일제 강점기의 미륵사지 석탑 붕괴 방지 대책은?

 

 

중고등학교 때 국사시간에 배웠듯

붕괴를 막기 위해 또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콘크리트를 발라 놓았다고들 한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 십 수 년이 지난지라 요즘에 어떻게 배우는지는 잘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그 당시의 붕괴 방지 대책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일단 그림 1을 다시 보자.

 

 

그림 1. 해체 전의 미륵사지 석탑

 

 

그림 1을 보면

석탑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기단 및 1층 부분에 석축을 쌓은 조선시대의 보수,

그리고 콘크리트로 붕괴 방지를 한 일제 강점기의 보수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냥 그 시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붕괴 방지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 그림을 보면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림 9. 치장석의 입체도(북서측)

 

 

그림 9 2층 이상의 심주석과 적심석,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시공한 콘크리트를 제외하고

해체 직전의 1층과 기단부, 조선시대에 축조한 석축, 그리고 6층까지의 치장석만을 도시한 그림으로

치장석의 하중을 지탱하는 돌들이 없을 경우에

미륵사지 석탑이 구조적으로 얼마나 불안정한 지를 확연히 보여준다.


 

, 바람으로 인한 풍화, 적심석간의 모래 및 점토 유실, 석탑 상부 붕괴 등으로로 인해 

적심석과 심주석이 일제 강점기 전에 이미 그 역할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점과


앞서 그림 6 7에서 본 것과 같이 치장석 자체에도 상당한 균열이 발생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림 9와 같이 치장석이 기울어진 상태의 미륵사지 석탑이 붕괴직전이었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석탑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콘크리트였다는 점 역시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콘크리트를 이용한 붕괴 방지가 콘크리트와 접촉한 석재 부위의 부식을 가속시켰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다.


 

흔히 붕괴 방지를 위하여 석탑의 뒷부분에만 콘크리트를 시공하였다고 생각하지만아래 그림과 같이,

외부 치장석 간의 접촉 부분에서 유실된 석재 부분과 치장석 자체의 균열부분에도 콘크리트가 시공되어

이 부분에서도 부식이 촉진된바 있다.

또한 석탑 해체 후에 이 부분의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안다.


 

 

그림 10. 콘크리트를 통한 일제의 치장석의 보수

 

 

하지만,



‘저 시대에 돌, 모래, 진흙의 구시대적인 재료와 콘크리트를 제외하고

석탑의 붕괴 방지를 위한 재료가 과연 무엇이 또 있었는가?


‘그러면 붕괴 직전인 석탑을 과연 그냥 두었어야 할 것인가?



에 대해 잠시만 생각해본다면,

일제의 석탑 붕괴 방지 대책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조금은 가혹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엔 돌로 막았고, 일제시대엔 콘크리트로 막았다.

‘그나마 걔네들 덕분에 석탑의 원형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가깝게 알 수 있었다.

 


뭐 이정도로 생각해 줄 수 있지 않을까
?

 

 

, 이 부분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5.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은 왜 계속 늦어지는가?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계획이 2007, 2009, 그리고 2014년으로 왜 계속 미뤄지는가는

미륵사지 석탑 중 동탑의 복원 형태와 이미 설명한 내용을 조합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림 11에서처럼 현재 복원중인 미륵사지 석탑은 미륵사의 서쪽(정면에서 좌측)에 있는 탑이고

동탑은 탑 부지 주변에는 탑 부재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는데,

서탑을 통해 그 원형을 추정하여 1993년에 복원되었다(그림 12).

 

 

 

그림 11. 미륵사 추정도

(출처: 미륵사지유물전시관 홈페이지 http://www.mireuksaji.org)

 

 

그림 12. 1993년 복원된 미륵사지 동탑

 

 

미륵사지 동탑은 극히 일부분의 부재를 재사용 한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부재는 현대식으로 가공하여 복원되었는데,


이때문에 '백제 석탑의 고풍스러움과 운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고 하여

유홍준 문화재청장으로부터 ‘최악의 문화재 복원사례’라고 개탄을 받는 등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71002002511&ctg1=12&ctg2=00&subctg1=12&subctg2=00&cid=0101051200000&dataid=200710020856000004)

 

‘실패한 문화재 복원사례가 아닌가’하는 논란이 일었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2536290&menu=dview&dencrt=zaRFGb2sNxbUXl0VbTY4NENaS2R3UHVsMzM4RjdweGJseldRU0hjUHNHU3RRSks3SVUwZGRLTnJOd1JaYnhjYw==&query=%B9%CC%B8%A4%BB%E7%C1%F6+%B5%BF%C5%BE+%BA%B9%BF%F8&term=#middle_tab)

 

 

서탑의 복원이 늦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은 본래 남아있던 6층까지만 복원될 계획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2&aid=0000210360)

 

6층까지 만의 복원에도 여러 계획안이 있는데,

크게 보면 그림 13과 같은 1안과 2안으로 나눌 수 있다.

 

 

 

1                                                                                 2

그림 13.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안

 



1
안의 방법은 탑의 뒷부분에 현대적인 부재를 사용하여야 하기 때문에(붉은 타원 부분, 북서방향),

고풍스런 백제의 멋을 살리지 못했다는 동탑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적용 받을 것이기에 가급적 배제해야한다.

 


따라서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을 하려면 2안과 같은 형태가 최선의 대책일 것이다.

 

 

하지만 복원과정에서,

 


1. 앞서 그림에서 보았듯 치장석 자체도 파괴되거나 균열이 발생하였다는 점,

2. 현재의 적심석(황색 부분)은 표면이 상당부분 풍화되고 상당수는 균열이 발생하여 사실상 사용할 수 없다는 점,

3. 적심석의 형태가 불규칙하여 적심석 사이의 공간이 빈 공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점

4. 2안과 같은 형태의 복원은 구조적인 불안정성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1.
파괴되었거나 균열이 발생한 치장석과 적심석은 석재용 접착제를 사용하여 접착하고,

2. (모래와 진흙은 비로 인해 유실될 수 있으므로)

   적심석 사이의 빈공간은 일정강도 이상의 현대적 인공 충진재로 채워넣으며

3. 그래도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불안정성을 해결하기 위해 일제의 콘크리트와 같은 인위적 구조물을 석탑 뒷부분에 설치하여야 한다.

 

 

일단 3번의 방법은 우리가 일제에게 가했던 비판과 같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1, 2번의 방법 역시 탑의 내외형을 보기 흉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어떤 방법을 적용하든 현대적 인공 부재 또는 충진재의 사용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복원된 동탑이 받은 비판을 또 다시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문화재청은



구조진단 결과 붕괴위험성이 예측되어 어쩔 수 없이 해체하였는데,

복원하려고 하니 ‘최악의 문화재 복원 사례’라는 동탑이 받았던 비판을 면할 수가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면초가, 진퇴양난... 뭐 이런게지...)

 


그나마 이런 비판을 최소화하려면
, 복원 책임자가,

 


1. 역사학과 고고학 전문가의 조언들 받고,

2. 건축구조공학 전문가의 해석을 통한 조언을 받아 구조적 안정성을 담보하여야 하며,

3. 충진재, 접착제와 관련된 부분은 재료공학자의 실험을 통한 조언을 받아 사용하고,

4. 치장석, 적심석, 심주석 등 석재 자체의 파괴 등과 관련해서는 암석역학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야하며,

5. 지반침하와 관련되어서는 지반공학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야한다.

 


그리고 이 모든 면을 고려하여 모든 전문가들이 수긍할 수 있는 최적의 복원을 해야한다
.

 

결국 복원 책임자는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하는 아인슈타인 이상의 천재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문회의에 참석해보면 각 분야 전문가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여

매 자문회의는 각 전문가가 자기 얘기만 하는 중구난방이 되기 일쑤다.



구조해석에 참여한 석박사 이상의 선후배들과 얘기한 결과는,

원형그대로의 복원은 ‘불가능’이었다.


 

이런 내우외환의 문제에 봉착한 문화재청이 과연 어떤 혜안을 제시할 것인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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