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가을,
나우누리의 스포츠 게시판(나우 스게)에서 놀다가 알게 되어 처음 방문한 본격스포츠웹진 후추닷컴(www.hoochoo.com).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보이는 깊이있는 글들과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자유게시판 후추통(現 누드게시판)은
수준낮은 논란으로 말싸움하기 일쑤이던 나우 스게와는 비교도 안되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 중에서도,
인기종목의 평가절하 받던 선수나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비인기종목의 선수들을 재조명했던 '명예의 전당'은
후추의 색깔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코너였다.
몇 페이지에 걸친 선수 인터뷰와 활약상, 그리고 재조명은 요즘에도 쉽게 볼 수 없다.
스포츠에 관한 독자분석, 비평 그리고 관전평을 쓰던 스포츠 자유게시판 독분비관은
기자나 전문가의 분석보다도 수준높은 분석글들이 넘쳐흘러서
아직 인터넷이 그리 활발하지 않던 시기에
스포츠에 관한 정보를 질낮은 스포츠신문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깊이있는 분석을 보여주었더랬다.
(당시 독분비관에서 활약하던 독자와 후추기자들은 후추가 망한후(--;) 다른 스포츠관련 매체의 기자와 해설위원 등으로 활약
한다. 서형욱 축구해설위원이 대표적인 예.)
자금난과 주방장님(사이트 관리자로 이해하면 될듯)의 급작스런 미국유학으로 5년만에 폐쇄될 위기에 처했지만
독자들의 애정과 주방장님의 배려로 독분과 누드만은 남긴채로 2003년 폐간된다.
사이트가 망하면 사람들도 뿔뿔히 흩어져야 하는 것이거늘,
신기하게도 후추는 독분과 누드의 두 개의 게시판 만으로도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서버가 불안정한데다 외부 공격에 취약해서 한두달 정도 접속이 안되는 것은 예삿일인데도
후추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후추가 다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갖고 꾸준히 방문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독분비관에서 스포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누드게시판에서 연애, 음악, 영화, 옆집 강아지 집 나간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삶을 얘기한다.
그러면서도 (관리자가 없다시피 하는데도) 상대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잊지 않는다.
예의와 배려는 잊고 익명성이란 가면속에 숨어서 저글링 개떼같은 속성을 보이는 누리꾼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후추라는 사이트는 보면 볼수록 신기한 곳이다.
오늘(9월 9일)로서 그런 후추가 열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후추를 보며, 웃고, 울며, 감동하며 10년을 보냈다.
10년 동안 후추가 있어 정말 행복했다. 축하한다 후추야~
p.s.
글솜씨도 떨어지는데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라 생각해서
블로그나 미니홈피같은 개인적인 공간을 제외하면 온라인 상에서 글쓰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는 편이다.
그런데 후추에는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내 사는 이야기를 하고,
즐겁다고, 힘들다고, 세상에 분노했다고 편하게 얘길하곤 한다.
검색해보니 그런 글들이 4페이지 55개정도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한 곳이다. 후추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