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첫번째 논문심사 후 어느 교수님 曰,
"논문 초고를 읽을 때에는 이해 안가는 부분이 많았는데, 발표를 듣고 나니 거의 해결됐어요.
발표는 아주 좋았는데, 초고에는 수정할 부분이 많네요."
요약하면, 논문 초고를 개판으로 썼다는 뜻..;
인정한다.
논문 초고는 쓰기 싫은 거 억지로 부여잡고 겨우 마무리 한 후에는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반면에 좋아하는 내용에 대한 글을 쓸 때에는 이런 칭찬을 듣기도 한다. (http://pgr21.com/?b=8&n=28751)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A4 용지 10장을 갓 넘기는 저 글을 쓰기 위해
참고가 된 서적을 읽고 또 읽은 후에 자료를 정리하는 데 쓴 시간만 수 일,
실제로 글을 작성하고 어색한 부분을 수정하는 데 걸린 시간도 6시간이 넘으니까 말이다.
블로그에 심각한 글 하나 올리려면 대개 며칠이 걸린다(이런 잡담 글 빼고..).
자료 조사하고 이미지 준비하고 내용 적고 어색한 부분 수정하고...
그래도 즐겁다. 왜?
내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적어나가기 때문...
그게 논문 초고와 블로그에 싸질러 놓는 글이 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요즘 '내 나이가 5살만 어렸다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봤자 30대..-_-;)
아마 그랬다면 어영부영 살다보니 하게 된 박사과정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과감하게 대학원을 그만 두었을테니 말이다.
이제 와서 그런 일을 하기엔 많이 늦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동안 이 분야에 쏟아왔던 시간과 노력이 아깝기도 하고, 불투명한 미래가 두렵기도 하기 때문...
그런 면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고 멋지게 보인다.
새로운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한 전 여친과 과외중인 재수생 녀석,
처음부터 지 하고 싶은 일 하려고, 박봉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경력을 쌓아 결국 성과를 이뤄낸 내 동생,
그리고 게임 디렉터로서 일하는 며칠 전 결혼한 친구 남편 등등...
2.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며칠 전 결혼한 친구 얘기가 나온 김에 중얼중얼...
나이가 들다보니 아쉬운 것이,
맘 속에 있는 고민을 흉금없이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게 또 어쩔수 없는 것이,
남자든 여자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서 가정에 집중하게 되고 친구들에게는 소홀할 수 밖에 없기에...
게다가 관심사가 달라지니 얘기는 겉돌게 되고, 그렇게 되니 자연스레 맘속 고민은 섣불리 얘기할 수 없는 악순환의 반복.
(관심사가 그나마 비슷하니...)
어쨌든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주위에 결혼한 친구 녀석들이 많아지다 보니 그에 따라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니, 줄어들다 못해 이제는 단 한명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지지난주에 그 녀석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밤새 술마시면서 사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불만과 고민, 사는 것에 대한 고민 등을
서로 얘기하고, 자신의 생각을 얘기해주고, 상대방에게 힘든 일 있으면 아무런 댓가 없이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그 녀석의 결혼과 함께 마지막 남은 소중한 친구마저 사라진 것 같아 며칠동안 참 싱숭생숭했다.
잘 모르는 녀석들은 "그러길래 왜 바보같이 전 여친 결혼식에 가냐?"고 말하기도 하고,
"넌 결혼식에 안올줄 알았다"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그 딴거 때문에 싱숭생숭한 거 아니라고 얘기해도 대부분은 이해하지 "않는" 눈치더라.
설명해줘도 이해 못하는 인간들에게 굳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며 납득시키고 싶진 않다.
다름을 틀림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이해 못한다고 자신이 옳고 타인의 생각은 그르다고 생각하는 인간들... 세상엔 참 많다.
에휴, 그냥 그렇게 살아라.
3. 진심으로 웃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
어찌됐건 그 녀석 결혼식에 갔다가 문득 이 한 장의 사진이 생각났다.
그 녀석 이후로 대략 네 번 정도의 연애를 했지만 누구에게도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다.
어디 웃게 해줘야 말이지..-_-;
아마 저 때는, 그 녀석이 화나서 기분 풀어주려고 일부러 더 활짝 웃었던 것 같다.
아마도 최근에 만난 녀석들은 나를
'배려 잘 해주는, 조금은 과묵하고, 착하게 보이는(!) 오빠'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듯 한데,
사실 정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잘 웃고, 애교도 잘부리고, 때로는 진상짓도 잘한다(응?).
"연애 안한지 6개월도 넘었어."라고 얘기하면 주위 사람들이 놀라곤 하는데(왜 놀라?--;)
논문도 거의 끝나가는 무렵이라 슬슬 기지개를 펴고 싶긴하다.
근데 이젠 어중이떠중이 말고,
배려해줬더니, 그걸 이용해 먹으려는 그런 녀석들 말고,
상대방을 위해 진심으로 웃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사람으로...
사족 1. 그 날 싱숭생숭하던 차에 친구로 지내는 전 여친 몇몇과 문자 한 적이 있는데,
니들은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다.
사족 2. 근데 나, 참 못생겼다..ㅜ.ㅜ;
이번 생에 착한일 많이 해서 다음 생에는 원빈 얼굴로 태어나겠어!! (사람으로 태어나면 그나마 다행인가..;)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는 미국의 유명한 진화생물학자입니다.
그는 열렬한 야구광(흔히 말하는 양키즈빠)으로도 유명했는데,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임’을 역설한 (4부로 구성된) 그의 저서 <풀하우스>(Full House, 1996)에서
한 부를 통째로 할애해서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무려 진화론적 관점에서 말이죠.
‘진화생물학’이라 하면 내용이 어려울 것 같지만,
이 분 특징이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기’입니다.
당대에 가장 널리 알려지고 많이 읽힌 교양과학 작가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죠.
야구팬 입장에서 ‘4할 타자의 절멸’에 대한 그의 진화론적 견해는 독특하면서도 흥미롭습니다.
어느 사이트에서 4할 타자와 56경기 연속 안타에 관한 글이 있기도 해서
생각난 김에 스티븐 제이 굴드의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 한번 적어볼까 합니다.
굴드가 이 책을 쓸 무렵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 분석한 원인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과거에 비해 야구에 집중하지 않을 뿐더러 멍청해진 요즘 타자들.
2. 과거에 비해 바쁜 일정, 더 많아진 야간 경기, 언론에 의한 시달림 등 열악해진 외부 조건.
3. 투구와 수비 실력, 구단의 분석 능력의 향상에 비해 더딘 타자들의 실력 향상 속도.
굴드는 1번 분석에 대해선 과거에 대한 환상으로 인한 비논리적인 소리로 치부합니다.
과거에 비해 MLB에서 야구를 하는 모집단의 크기가 인종이나 국가수, 인구수 면에서 엄청나게 증가하였고,
선수 관리 프로그램 역시 체계적으로 변화하였는데,
작고 한정된 집단에서 뽑혀 그럭저럭 훈련받은 과거 선수들이,
최대한의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는 오늘날의 거대 야구 산업에서 배출한 타자보다
공을 더 잘 쳤다는 주장이 도대체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냐는 거죠.
더 큰 집단이나 다양한 인종 가운데서 선발되어 더 정밀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쪽이
당연히 더 낫다는 견해입니다.
2번 분석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지는 않는데
열악해진 외부 조건은 투수나 타자 마찬가지라는 뉘앙스로 반박합니다.
(개인적으로 언론의 지나친 관심은 ‘4할 타자의 절멸’에 조금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흠...)
3번 분석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야구실력이 향상되었는데 타격만이 향상 추세에서 뒤쳐져 있을 이유가 없다’고 반박합니다.
수십 년 동안 타자와 투수의 키와 몸무게 변화에 관한 표를 제시하며
체격적인 조건에서 비슷하게 변화했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마라톤, 100m 달리기, 수영, 경마 등 다른 스포츠에서 꾸준히 기록 향상이 이뤄지는데
유독 타격만이 퇴보될 이유는 없다고 역설합니다.
다만 다른 스포츠를 보면 현대에 이를수록 기록 향상 속도가 떨어지는데,
굴드는 이에 대해 오른쪽 벽(인간의 한계)이라 부르며
뒤에서 설명할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 활용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굴드는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는
타격 능력의 상향평준화에 기인했다고 설명합니다.
다음 그림들을 보죠.
이 그림은 시간에 따른 MLB의 평균 수비율향상에 관한 그래프입니다.
시간에 따라 선수들의 수비율이 점점 증가하는 경향(수비실력의 상향)이 보이지만,
그 속도는 점차 둔화되어 어떤 값을 향해감을 알 수 있습니다.
굴드는 이 '어떤 값'을 인간의 한계인 '오른쪽 벽'이라 부릅니다.
첨부하지는 않았지만 굴드는 시간에 따른 'MLB 모든 선수와 베스트 5의 평균수비율'도 보여줍니다.
이 표에 따르면 1870년대에는 베스트5의 수비율과 전체 선수의 수비율 차이가 약 0.08에서 1970년대에는 0.02로 줄어듭니다.
전체 선수들의 평준화를 보여주는 것이죠.
이 그림은 내셔널리그 팀들의 승률간의 표준편차입니다.
굴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표준편차가 감소하는 것은 팀들간의 실력 역시 평준화 되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만능선수(둘 이상의 수비위치에서 경기한 선수)의 숫자 역시 줄어들고 있습니다.
전체 선수들의 능력이 상향됨에 따라 만능선수의 수도 줄어드는 것이죠.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들의 타율의 표준편차입니다.
타율의 표준편차 역시 시간에 따라 줄어드는 경향을 보입니다.
전체 선수들의 타격 능력이 평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0년씩 끊어서 최고 타율의 평균값과 리그 평균 타율의 차이를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격차가 줄어들고 있죠.
이 역시 타격 능력의 평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굴드는 이런 그래프들을 통해 수비, 투구 뿐만 아니라 타격 능력 역시 꾸준히 상향평준화되어 왔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왜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졌는가?'
굴드는 이를 '오른쪽 벽'이라 불리는 인간의 한계와
야구라는 시스템의 특성상 타자들의 평균타율이 2할 6푼 안팎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시간에 따른 MLB의 평균 타율의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이 평균수준은 투구나 타격이 어느 한쪽의 일시적 우위를 이용해
성스러운 국민적 오락의 안정성을 파괴하려고 위협할 때마다
즉각적인 (야구규칙 제정자들에 의해) 규칙 조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유지되어왔다"
메이저리그의 야구규칙 제정자들은 규칙변경(마운드 높이, 스트라이크존의 크기, 방망이 개조 허용 한계 등)을 통해
평균타율을 2할6푼 수준으로 조정해 왔다는 거죠.
그래프에서도 들쭉날쭉했던 1900년대 초반에 비해 현대야구 시기에는 평균타율이 2할 6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래프를 보면 4할 타자가 탄생한 시기에는 평균 타율이 3할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KBO 역시 이와 비슷한 추세를 보여 줍니다.
(평균 타율을 조절할 줄 알다니 KBO 관계자들도 생각보다는 멍청하지 않은 걸까요? -_-;;)
어찌됐건,
평균 타율이 3할에 육박하면 4할 타자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현대 야구에서 평균 타율은 2할 6푼 수준에서 결정되므로 4할 타자가 나올 확률은 매우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균 타율이 2할 6푼이라고 가정한 이 그림을 보면,
과거에 비해 현재 정규분표의 그래프가 전체적으로 '오른쪽 벽' 방향으로 이동(타격능력의 상향)하면서,
그 폭이 줄어드는 것(평준화)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과거 야구에서는 우측 변이에 해당하는 상위 5% 안에만 들어도 4할 달성이 가능했지만,
현재 야구에서는 상위 5% 안에 들어도 3할 5푼 정도만 가능할 뿐이라는 것이죠.
현대 야구에서 4할 타자가 되려면 상위 0.1% 이상의 변이값이 나오거나 하지만,
타자들의 타격 능력이 '오른쪽 벽'을 향해 상향평준화되어가는 현대 야구에서는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죠.
어쩌면 미래에는 타자들의 타격 능력이 이와 같은 형태와 같은 그래프로 나타나서
4할타자를 아예 볼 수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 너무 극단적인 그래프이긴 합니다..;)
이런 설명을 하면서 굴드는 자신이 '4할 타자의 절멸'을 지나치게 강조했을 수도 있다며,
깨어질 수 없는 기록은 없으며,
다만 4할 타율은 과거에 그렇게 흔하던 기록이 아니라 한 세기에 한 번 성취될까 말까 할 정도의 극도로 희귀한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보다 훨씬 더 엄청난 성취일 것이라 말하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야구광답게 4할 타자를 꼭 보고싶다는 뉘앙스더군요.
(최근 4할 타자에 가장 가까웠던 94년 토니 그윈의 기록달성 가능성을 중지시킨 리그 중단을 얼간이 짓 이라고까지 말합니다. 하하)
ps)
1.
굴드는 '만들어진 신'으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절친이자 경쟁자로도 유명한데,
도킨스는 굴드의 풀하우스를 보고 다음과 같은 불평을 터뜨립니다.
무슨 알아먹지도 못할 야구 이야기가 이렇게 길어? 내가 크리켓 이야기 주욱 늘어놓으면 댁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수?
2.
굴드는 결국 4할 타자를 못보고 고인이 되었습니다..;


